주말 저녁에 뭘 볼지 고민하다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 적 없으신가요? 저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꽤 챙겨보는 편인데, 딱 맞는 작품을 만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MBC 21세기 대군부인은 2회 만에 시청률 11%를 돌파하면서 그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줬습니다. 아이유와 변우석이라는 조합이 얼마나 강력한지,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사극과 현대가 만난 세계관, 새로운가요?
드라마를 처음 켰을 때 솔직히 설정이 낯설었습니다. 왕실이 살아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배경인데, 군주제(君主制)가 현대에 공존하는 세계관입니다. 여기서 군주제란 왕이나 대군 같은 왕족이 실질적인 상징 권위를 유지하면서 현대 정치 구조와 함께 작동하는 체제를 말합니다. 조선 시대의 신분 질서가 형태만 바뀐 채 21세기에도 살아남은 셈이죠.
처음에는 '이게 현실감이 있을까?' 싶었는데, 드라마가 그 설정을 꽤 촘촘하게 풀어갑니다. 왕립학교라는 곳에서부터 반가(班家) 출신만 입학할 수 있는 성균관, 섭정(攝政)을 하고 있는 이안대군까지, 조선의 신분 구조가 고스란히 현대에 이식된 느낌입니다. 여기서 섭정이란 왕이 어리거나 직접 통치하기 어려울 때 대신 국정을 맡아 처리하는 역할을 뜻합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왕을 대신해 이안이 섭정을 하고 있다는 설정이 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를 만드는 핵심 축입니다.
신분제도가 아직 살아 숨 쉬는 세계에서 재벌가 서출(庶出)이라는 이중 핸디캡을 가진 성희주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는 게 이 드라마의 묘미입니다. 서출이란 정식 혼인이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를 뜻하는 말로,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라는 벽에 막히는 캐릭터의 고충이 꽤 설득력 있게 그려집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이런 세계관 설계가 단순한 판타지로 끝나지 않고 현실의 계층 문제를 은근히 건드리고 있어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드라마가 다루는 이 신분 갈등 요소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입니다. 한국의 사회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본인의 노력으로 계층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드라마 속 희주의 분투가 단순히 픽션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유·변우석 케미, 기대해도 됩니다
변우석은 선재업고튀어로 크게 주목받은 뒤 이 작품을 촬영했는데, 저는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전작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면 새 캐릭터가 겹쳐 보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안대군은 완전히 다른 결의 캐릭터입니다. 말수가 적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섭정이라는 위치 때문에 늘 억눌려 있는 인물입니다. 그 절제된 표현이 오히려 더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아이유가 연기하는 성희주는 반대입니다. 직진에 직진을 거듭하고, 주작(造作) 플러팅도 스스로 주작이라고 말하면서 밀어붙이는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주작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꾸며서 만들어낸 상황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로, 드라마에서는 희주가 우연을 가장하지 않고 처음부터 "제가 뒷조사를 했습니다"라고 털어놓는 솔직한 어프로치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제가 보면서 가장 웃었던 장면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대군에게 "저 돈 많아요, 학벌 좋아요, 능력은 더 좋고, 이혼도 해 줄게요"라고 조건을 줄줄이 읊는 장면은 예상 밖이었고, 솔직히 이건 아이유가 아니면 이 정도 밀도로 소화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캐릭터의 온도 차이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갖는 힘은 상당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흔히 로코(RomCom)라고 부르는 이 장르는 주인공 사이의 갈등과 감정 변화를 통해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됩니다. 제 경험상 이 장르에서 두 캐릭터의 온도 차이가 클수록 그 간격이 좁혀질 때의 설렘도 커지는데, 희주와 이안의 조합은 그 간격이 꽤 넓게 잡혀 있어서 앞으로의 전개가 더 기대됩니다.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주목해야 할 케미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적극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희주와 매번 거절하면서도 조금씩 반응하는 이안의 밀고 당기기
-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이 현재 서사에 쌓이는 방식
- 신분 차이를 두 사람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공감대 형성
오글거려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
로맨틱 코미디를 보다 보면 간혹 너무 작위적이다 싶은 장면에서 살짝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몇 장면에서 "이건 좀 오글거리는데"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오글거림이 드라마를 끄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 화가 더 기다려졌습니다.
드라마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로맨틱 코미디 장르 특유의 감정 이입 구조, 즉 시청자가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현상을 '파라소셜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이라고 부릅니다. 파라소셜 상호작용이란 시청자가 실제 관계는 아니지만 미디어 속 인물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드라마가 오글거려도 계속 보게 되는 건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한국방송학회).
제 경우에도 희주가 열 번 거절당하고도 또다시 도전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 사람 왜 저래'가 아니라 '다음엔 어떻게 하려고'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그게 이 드라마가 가진 흡입력입니다. 매주 금토 밤 9시 50분이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오랜만에 생긴 것 같아서, 솔직히 요즘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고를 때 고민이 많으신 분이라면 이 작품은 한 회만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사극 설정이라 진입 장벽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대 배경과 맞물려 있어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비주얼과 케미가 서사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고, 조연들의 연기도 빈틈이 없어서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시청률이 괜히 2회 만에 두 자릿수를 넘긴 게 아니라는 걸, 직접 보시면 바로 납득하실 겁니다.